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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택지적비 이미지
사택지적비
  • 유물번호부여(扶餘)-000101
  • 한자명칭砂宅智積碑
  • 국적/시대-한국(韓國)-백제(百濟)
  • 출토지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 재질석- 화강암
  • 문양
  • 용도사회생활-기념
  • 크기높이 109.0
  • 참고도록국립부여박물관 소도록(2011)
  • 전시실 제2 전시실
백제 귀족 사택지적이 세운 비석으로 관북리에서 발견되었다. 이 비석은 오른쪽에서 네번째 행까지 한 행에 14자씩 모두 56자만이 남아 있다. 비문 첫머리의 글자는 갑인甲寅으로 추정되는데 654년에 해당한다. 일본의 고대 역사를 기록한 책『일본서기』에는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대좌평大佐平 지적智積’이 등장한다. 그는 사택지적비에 등장하는 ‘내지성奈祗城의 사택지적砂宅智積’과 같은 인물로 여겨진다. 대좌평은 백제의 최고위 관직이었고, 사택砂宅 가문은 백제의 유력??? 귀족이었다. 사택지적은 최고 귀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654년, 절과 탑을 짓고 비석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비문에서는 세월의 덧없음에 대한 탄식과 불교에 의지하려는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사택지적비의 오른쪽 측면 상단에는 둥근 원 안에 봉황이 조각되어 있다. 머리를 들고 날개를 활짝 편 당당한 모습이다. 백제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에 봉황의 형상을 장식하였다. 사택지적비의 봉황 또 한 전형적인 백제의 봉황 무늬를 연상시키는 한편, 잘 알려지지 않은 고대 비석의 의장과 관련하여 주목된다.<br/><br/>甲寅年正月九日 갑인년 정월 9일<br/>奈祇城砂宅智積 내지성의 사택지적은<br/>慷身日之易往 날이 갈수록 몸이 쉽게 노쇠해지고<br/>慨體月之難還 달이 갈수록 돌아오기 어려움을 슬퍼하여<br/>穿金以建珍堂 금을 뚫어 진귀한 당을 짓고<br/>鑿玉以立寶塔 옥을 다듬어 보배로운 탑을 세우니<br/>巍巍慈容 높이 솟은 늠름한 모습은<br/>吐神光以送雲 신령한 빛을 뿜어 구름을 보내는 듯 하고<br/>??悲貌 위엄 있고 비장한 용모는<br/>含聖明以 성스러운 밝음을 머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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