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주요 문화 유산

백제를 상징하는 문화 유산을 소개합니다.

  • 부여 가림성(성흥산성) 1번째 이미지

    부여 가림성(성흥산성)

    Garimseong Fortress, Buyeo 扶餘 加林城

    • 시대백제 동성왕 23년(501)
    • 지정유산사적
    • 지정(등록)일1963-01-21
    • 분류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수량/면적309,739㎡
    • 소재지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군사리 산1-1)
    • 관리자(관리 단체)부여군
    • 출처* 내용-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 이미지-부여문화관광 홈페이지(공공누리 제1유형)

상세내용

가림성은 백제의 수도를 지키기 위해 금강 하류 부근에 쌓은 성으로, 금강을 따라 서해에서 도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수상 교통로 방어의 거점을 담당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백제 동성왕은 501년 8월 가림성을 쌓고 궁궐의 호위를 총괄하는 위사좌평(衛士佐平) 백가(苩加)를 보내 성을 지키게 하였다. 불만을 품은 백가는 동성왕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동성왕의 아들인 무령왕이 반란을 진압하고 그를 처형하여 시신을 백마강에 던졌다고 한다.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이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이 성이 전략적으로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림성은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흥산의 꼭대기를 돌로 둘러쌓은 테뫼식 석성(石城)으로 내성(안쪽 성)과 외성(바깥쪽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에서는 동·서·남문 터와 우물 터, 외성에서는 남·북문 터 등이 확인되었다. 가림성의 내성은 바깥쪽을 돌로 쌓고 안쪽을 흙으로 다지는 백제 후기의 산성 축조 기법으로 지어졌다.


가림성은 백제 부흥 운동군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으며,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庾黔弼)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하였다고 하여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


이렇듯 가림성은 백제 때 쌓은 성곽 가운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자 당시의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1963년 ‘부여 성흥산성’으로 사적 지정이 되었고, 2011년에 백제시대 명칭인 ‘부여 가림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