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전시실

백제인의 공계기술과 종교문화에 대한 재인식 사비백제와 백제금동대향로

제2전시실을 방문하게 되면 3부분으로 나누어 백제유물을 전시하고 있어요.

궁금하면 클릭!!


제1부 사비 천도와 왕경문화에서는

백제가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길 것을 결정하고 이전계획부터 왕경문화까지 우아하고 세련된 백제문화를 피웠음을 당시 출토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어요 ※천도 = 수도를 옮김, ※왕경 = 서울을 이르는 말

한성(서울)475년→웅진(공주)→사비(부여)538년

왜 사비가 새도읍지가 되었을까요?

위성으로 본 부여군 전체

백마강과 부소산으로 이루어진 방어에 유리한 자연조건 + 해상교토로의 넓은 평야를 기반으로 한 경제적 조건

왕경문화를 보여주는 유물들

  • 01 수부명 기와 - ‘수부首府’는 왕실과 중앙관청을 의미하므로, 왕궁과 중앙관청 건축시설이 여기 부여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지요.
  • 02 은꽃모양 관꾸미개 - 능산리고분군에서 출토된 것으로 6품인 나솔 이상의 관리만이 할 수 있었던 관 장식이었다고 해요.
  • 03 호랑이 모양의 남자 변기 호자 - 높이 26.5cm, 길이 26.0cm로 호랑이가 앞다리를 세우고 얼굴을 왼쪽으로 돌린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으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손잡이가 달려있어요. ※ 중국에서는 황제가 행차할 때 시중을 드는 하인이 호자를 들고 뒤따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고 해요.
1 2 3

성왕과 사비도성에 대한 동영상을 보실까요?


제2부 능산리사찰과 백제금동대향로에서는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을 위해 능산리에 세운 사찰이야기와 능산리사찰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 특히 백제금동대향로에 숨겨진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왕실의 사찰, 능산리 사찰 - 능산리사찰이 있었던 절터는 부여능산리고분군과 부여나성 사이에 위치해 있어요.

왼쪽 - 부여나성, 오른쪽 - 청산성, 부여나성, 능산리사지, 능산리고분군, 부여나성 1993년부터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였으며 1993년과 1995년에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이 출토되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지요. ※사찰=절 ※능산리고분군=백제 왕들의 무덤으로 총 7기가 있음 ※부여나성=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 시설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한 동영상을 보실까요?


제3부 돌과 나무에 새겨진 백제문화에서는

부여에서 출토된 돌과 나무에 기록된 문자자료를 통해 백제인의 사회생활문화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백제의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사택지적비

1948년 부여읍 관북리 도로변에서 발견된 것으로 '현존 높이 102cm, 너비 38cm, 두께 29cm'

단아하고, 세련된 서체로 중국 육조 시대의 사륙변려체의 문체를 보여주고 있어요. 갑인년(654년) 절과 탑을 짓고 비석을 세우면서 세월의 덧없음을 탄식하고 불교에 의지하려는 내용으로 백제 귀족들이 향유했던 문화의 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제2전시실에는 지금 소개해 드린 유물보다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더보기 click


이처럼 제2전시실에서는 백제가 사비로 천도한 이후 가장 세련되고 원숙해진 왕경 문화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백제금동대향로이며 백제인의 전통적인 세계관과 도교사상이 담겨진 동아시아 최고의 걸작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른 백제의 공예기술과 종교문화에 대해 세계적으로 재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1전시실 둘러보기 제3전시실 둘러보기 기증유물실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