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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전시

야외전시실은 중정에 있는 부여석조(보물194호)를 비롯하여, 박물관 앞 뒤뜰에 마련된 전시장에 탑, 불상, 비석, 석조 등 많은 석조유물이 있습니다. 야외전시 외부전경 (Outside Gallery of Museum)

국립부여박물관의 전시실은 총4개의 상설전시실과 야외전시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1,000여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현위치 야외전시실입니다.

부여석조(扶餘石槽) - 지정별: 보물194호, 출토지: 부여 관북리 추정왕궁터(扶餘 官北里 推定王宮攄)

부여현의 동헌건물 앞에 있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박물관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이 석조는 왕궁에서 연꽃을 심어 그 꽃을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것으로, 「工」자형 받침 위에 둥근 꽃봉오리 형태의 석조가 올려져 있다. 석조의 표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세로줄을 새기고 그 사이에 글을 새겨 넣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보인다.
글은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내용으로,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9호)의 1층 탑몸돌에 새긴 것과 같은 것이다. 본래 이 석조가 있었던 장소는 백제의 왕궁터로 전해지고 있어 당시 왕궁에서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형태가 풍만하면서도 깔끔한 곡선으로 처리되고 있어, 백제인의 간결하고 소박한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 - 지정별: 보물21호, 출토지: 부여 부소산(扶餘 扶蘇山)

당나라 장수 유인원(劉仁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碑)로 원래는 부소산에 있었다. 몸돌 앞·뒷면에 글을 새겼으나 심하게 마모되어 있어 알아보기 힘들다. 비몸돌과 머릿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릿돌에는 여섯 마리의 용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비문에는 유인원이 당나라 고종에 의해 발탁된 이후의 활동상을 적고 있으나,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백제 부흥운동을 평정한 그 이후의 행적은 비문이 지워져 알 수 없다.
비록 당나라 장수의 공적비이기는 하지만 비문에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 700여명이 당나라로 압송된 사실과 부흥운동의 주요 내용, 폐허가 된 도성의 모습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아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박물관석조여래입상(博物館石造如來立像) - 지정별: 충청남도지정문화재자료 106호, 출토지: 부여 동남리 전 천왕사지 부근(扶餘 餘如山 傳 天王寺址 附近 )

1933년에 부여군 부여읍 금성산의 전천왕사지(傳天王寺址)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몸체에 비하여 머리가 크며 어깨와 하체가 거의 일직선으로 곧바로 서 있는 자세이다. 얼굴은 살이 올라 풍만하며 눈은 반쯤 감겨 있다.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으며,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아무런 무늬없이 발 밑까지 내려져 있다. 왼손은 위로 올려 손바닥이 밖을 향하게 하였고, 오른손은 아래로 늘어뜨려 손바닥이 보이게 하였다.
이 불상은 몸체에 비해 머리가 크게 표현되어 있어 균형미가 부자연스럽다. 충청도 일원에서 유행했던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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